■ '코로나19' 예방하겠다며 주민 방청도, 취재도 막아지난 14일 시작된 강원 철원군의회 제263회 임시회. 철원군의 자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농업인 수당 등 산적한 지역 현안을 다루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방청객은 없었습니다. 철원군의회는 촬영 취재까지도 막았습니다. 철원군의회는 코로나19 감염을 막으려는 조치라고 밝혔습니다.
의회 방청 불허로 빈 방청석 "이번 임시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본회의장 일반인 방청은 불허하기로 결정됐습니다. 기자분들도 가급적이면 방청을 자제하여 주시기 바라며,부득이하게 방청을 원하실 경우 간단히 스케치 정도의 방청에 한해서 허용됨을 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의석마다 비말 차단용 투명 가림막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엔 철원군의회의 주장이 말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의원석 앞 비말 차단용 투명 가림막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방청이 안 된다면, 회의 내용은 어떻게 확인하나요? 철원군의회는 실시간 인터넷 방송이 되나요?"
철원군의회의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인터넷 방송은 하지 않습니다. 회의 내용을 알고 싶다면 나중에 철원군의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는 회의 속기록을 참고하면 됩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속기록이 올라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통상 회의가 끝나고 하루나 이틀은 기다려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주일도 더 넘게 기다려야 하기도 합니다.
■ 강원도 19개 지방의회 중 빗장 건 지방의회 3곳'다른 지방의회는 어떨까?'
취재진은 지방의회를 대상으로 방청 허용 여부와 인터넷 중계방송 여부를 일제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대상은 철원을 포함한 강원도 내 19개 지방의회로 한정했습니다.
조사 결과, 방청도 허용하고, 인터넷 중계도 하는 지방의회는 강원도의회와 춘천, 인제, 원주, 평창, 속초, 양양, 정선, 태백 등 9곳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10개 지방의회 가운데, 홍천이나 동해 같은 시군의회 7곳은 방청을 허용하거나 인터넷 중계를 하거나 둘 중의 하나는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최소한의 회의 공개는 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철원, 횡성, 삼척 3곳은 회의 방청을 불허한 채, 인터넷 중계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아예 가려버린 겁니다.
■ 3,400만 원들인 방송 장비는 구내방송용?철원군의회를 포함해 기초의회 3곳에 다시 질의해 봤습니다.
"회의를 왜 공개하지 않는지?"
철원군의회의 답변입니다.
"올해 2월 본회의장에 방송장비를 설치했습니다. 3,400만 원 정도 예산이 투입됐는데요. 군의회 본회의장 안에도 커다란 TV가 설치돼 있습니다. 본회의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중계 안 하신다면서요?"
"아, 철원군청 안에서는 볼 수 있습니다."
수천만 원의 세금을 들여 회의 중계방송 장비를 설치해 놓고도, 군청 공무원들만 볼 수 있게 해 놨다는 얘기입니다.
"왜 일반 주민들은 못 보게 하신 건가요?"
"방송 장비는 완벽하게 준비됐습니다. 의원님들 의결이 되지 않아서 잠정 보류하고 있습니다."
철원군의회 내 중계 TV 화면 ■ "의회, 꼭 공개해야 하나요?"횡성군의회의 답변은 더 황당했습니다.
"회의 공개가 꼭 필요한가요? 회의 끝나면 다음 날 지역 신문에 개요가 다 나오는데…."
"그렇게 하면, 유권자들의 알 권리가 다 보장된다고 보시나요?"
취재진의 거듭된 질문에, 횡성군의회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서너 시간쯤 뒤 되돌아온 답변입니다.
"저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년부터는 인터넷 중계방송이라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보겠습니다."
한편, 삼척시의회는 원래는 방청은 허용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인터넷으로 회의를 중계 방송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방송망 설치 공사가 진행 중이라 잠시 회의를 비공개하고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올해 11월부터는 회의 공개도 하고, 인터넷 중계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돈이 문제라면 SNS나 유튜브 활용도…문제는 의지시군청과 시군의회는 지방자치를 이끌어가는 양대 축입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의사 결정 하나가 지역 주민들의 삶을 크게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든 유권자는 알 권리가 있고, 알아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특히, 지방의회의 투명성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하지만 방청도 중계도 안 되는 상황에선 의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의원들은 제 몫을 다 하고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의회 공개에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우선, 방청을 허용하면 됩니다. 이게 안 된다면, 방송사 취재를 허용하면 됩니다. 물론 두 경우 다 시군의회의 비용 부담이 없이 투명하게 의회를 운영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도 저도 안 된다면 회의를 인터넷으로 중계하면 됩니다. 회의실 1개를 기준으로 인터넷 중계 장비를 설치하는데 1억 원에서 2억 원 정도가 듭니다. 이것도 부담스럽다면, SNS나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회의를 실시간으로 공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부산광역시의회, 태백시의회 등은 이미 유튜브 중계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시의회 유튜브 실시간 중계 화면 태백시의회 유튜브 실시간 중계 화면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강원도의회의 경우 회기 중 하루에 1,200여 명이 인터넷 방송을 시청하고 있습니다. 춘천시의회도 1,000여 명, 양구군의회도 50여 명은 실시간 중계를 찾아봅니다.
이들 가운데는 거동이 불편해 회의장을 찾지 못하는 노약자, 멀리 떨어진 외곽지역에 사는 주민도 있을 겁니다. 직접 회의장에 가지 못하더라도, 원하면 언제든 의회를 지켜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밀실 의정, 탁상 의정을 막고, 내가 사는 동네를 살기 좋게 만들 수 있는 유효한 수단입니다.
결국, 지방의회의 공개 여부는 지방의원들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투명한 의정 활동은 자신들을 뽑아준 유권자들에 대한 지방의원이 짊어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