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환경부가 ‘제1차 댐 관리 기본계획’을 공개하며 2035년부터 화천댐 용수를 하루 60만t씩 빼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발표 이후 화천군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화천댐 용수 사용에 대한 보상은 화천댐 건설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양구군과 무관할 수 없다.
우선 화천댐이 가두고 있는 파로호의 주 수원은 양구서천과 수입천이다. 2003년 북한강 상류에 금강산댐이 건설되고 도수터널을 이용하는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을 위해 동해안으로 물길을 돌리게 되면서 북한강 상류에서 유입되는 수량이 감소한 이후 파로호로 유입되는 대부분의 물은 양구서천과 수입천에서 흘러간 것이다.
그리고 화천댐이 건설되기 전 1930년대 양구군의 총 인구는 5만여 명을 상회하고, 행정구역은 양구면을 포함한 7개면으로, 면적이 지금의 배에 가까운 1365㎢에 달했다. 그러나 1939년 시작한 화천댐 건설로 인해 양구군의 많은 지역이 수몰됐다. 특히 상업, 경제, 교통의 요충지로 가장 번성했던 본리를 포함한 북면이 수몰되어 폐면 됐고, 곡창지대인 함춘리와 대동리 지역도 지명과 함께 역사 속에 수장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주민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던 소작인들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거리로 쫓겨나 개척민이라는 이름 아래 정들었던 고향 땅을 등지고 만주 등지로 유랑 길에 올라야 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1938년 11월 18일 자 기사에는 ‘한강수전공사에 밀려나 만주로 이주하는 1만 2000여 주민에 대한 강원도 당국의 구제 방침 결정’이라는 내용이 실렸다. 기사 내용대로 해당 주민이 모두 만주로 이주하였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댐 건설로 인해 상당수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떠나 이주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양구군이 화천댐 건설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화천댐이 양구 지역에 위치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화천댐 용수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급’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듯해 안타까운 마음이다. 하지만 화천댐 건설로 인해 양구군은 큰 피해를 입었고 앞으로도 화천댐이 존재하는 한 피해는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피해에 비례한 합리적인 보상이나 정책적 대안 마련을 요구해야 한다.
8월 12일 강원도청 앞에서 양구군 수입천댐 건설에 반대하는 집회가 있었다. 이날 춘천의 최고 온도는 34.7도, 지면 온도는 무려 47.3도로 도청 앞의 아스팔트는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러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양구군민 150여 명은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며 온 힘을 다해 소리 내고 있었다.
이 무더운 날씨에도 지역의 주민들, 특히 연로한 어르신들까지 집회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동안 양구군 인근 지역에 화천댐, 소양강댐, 평화의댐이 건설되면서 삶의 터전이 수몰돼 이웃이 떠나가고, 도로가 끊겨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가게 되는 등 지역이 성장 동력을 잃고 인구가 점점 감소하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렇듯 댐 건설로 인한 피해가 가슴 깊이 새겨져 있기에 같은 일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만사 제쳐두고 집회 현장을 찾았을 것이다.
현재 양구군 도로변에는 수입천댐 반대 현수막을 볼 수 있다. 그중 방산중학교 11회 졸업생이 게첨한 현수막 글귀는 “양구는 충분하다, 용산에 막아라!”다. 이 글은 양구군민의 생존을 위해 정부에 호소하는 것이다.
70여 년간 양구군민이 입은 상처와 아픔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는 없다. 앞으로 국가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일방적으로 지역 주민이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댐 건설로 인해 ‘육지 속의 섬’으로 전락해 쇠퇴하는 양구군에 전환점이 될 새로운 성장 동력이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